박 대통령 최측근 국정철학 공유…정권 아닌 국민의 편에 서야

조 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발탁을 두고 설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그의 등장에 대해 이미 예견돼 온 일이 아니었느냐며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특히 청와대의 회전문 인사가 어디 한번 고장 나 본 적이 있었느냐며 박 근혜 대통령의 아집 성 인사 스타일에 다소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친박 진영에서는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 쪽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확실한 장관을 기용한 게 아니냐며 조 장관 내정자 발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누구보다 ‘박심’을 꿰뚫고 있는데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친박 진영에서는 큰 장점으로 꼽고 있다.

그러고 보니까 조 장관 내정자만큼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참모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특유의 외곬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 권력 틈바구니에서 배신의 역사를 줄 곧 지켜봐 온 까닭인지에 대해선 정확치 않지만 박 대통령의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조 장관 내정자는 박 대통령 패밀리의 장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 번도 쉽지 않다는 장관직을 두 번 씩이나 발탁, 정승 반열에 오르게 됐으니 그가 박 대통령의 사람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관직은 충성심만으로 수행하는 직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과거, 정권에 충성을 다한 인물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실패한 각료로 남아 있다.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오로지 정권 수호에만 매달린 탓이다. 굳이 멀리 볼 필요도 없다. 현대사에 오점을 남긴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특정인에 충성을 다하다 멍든 케이스다.

문체부에서 역대 최고의 장관으로 꼽히는 박 지원 의원(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체부 내 최고의 테크노 크라트(전문관료)로 불리는 유진룡 전 장관의 운명적 만남은 지금도 부처 내에서 회자되는 스토리다.

박 지원 장관이 문체부로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고민에 빠진 보직 인사가 대변인 임명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여러 사람을 추천했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그가 이력서를 가지고 직접 고른 인물이 당시 변방 보직이라고 불리는 국립 국어연구원에서 재직중인 유 진룡이었다. 박 지원과 유 진룡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가 예상했던 것과 같이 그렇게 순조롭지가 않았다. 보직으로 보면 당연히 상명 하복의 관계였지만 박 지원과 유 진룡, 이 두 사람은 상명 하복의 관계를 그렇게 강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결국 사달이 났다.

어느 날 박 지원이 부처의 성격과 대변인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유 진룡의 충성심을 강조했다. 몇 번 에 걸쳐 그같이 일이 반복되자 유 진룡은 무례하게(?) 장관에게 대들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충성심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하지만 정권을 위해 충성심을 보이고 그렇게 하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박 지원은 순간 대노 했다 한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30분 후 박 지원이 다시 유 진룡을 방으로 불러 올렸다. 그리곤 유 진룡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고. 박 지원은 이후 유 진룡의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해 줬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함 그 이상으로 발전했음은 물론이다.

박 지원이 당시 '김심'을 잘 헤아리는 정권 2인자라 불렸기 때문에 문체부를 잘 이끈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가 지켜본 역대 문체부 장관 가운데 그처럼 부지런한 장관은 본 적이 없다. 또 그처럼 공부하는 장관도 본 적이 없다. 1999년 당시 게임산업을 놓고 필자와 논쟁을 벌인 장관은 오로지 그 뿐이다.

유 진룡의 경우 격동기의 장관으로서는 맞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가 원칙만 강조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가 노무현 정권 시절, 차관으로 재임할 때 산하 기관장 인사 파동이 있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인물 오더가 내려오자 심사숙고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자리에 걸맞지 않은 인물이었다. 유 진룡은 그래서 청와대에 욕되지 않는 자리를 마련해서 제안을 다시 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옷을 벗는 길을 택했다. 그의 장관 시절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빚어졌다. 유 진룡은 이를 거절하다 끝내 해임됐다.

조 장관 내정자가 대통령의 측근임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박심’만 바라보고 장관직을 수행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박심’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이를 더 경계하고 거리를 둬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인 것이다.

2000년 정부 예산 가운데 문화예산이 1%를 돌파하자 정가 안팎에선 실세 장관이라서 역시 다르다며 박 지원을 치켜 세웠다. 하지만 그가 예산 부처의 문턱이 달아질 만큼 다녀간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최고위층의 눈치만 살펴서는 국민에게 공감하는 장관으로 기억될 수 없다. 그 해답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조 장관 내정자의 장도를 기대한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에디터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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